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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베이 100년 설계

명품부산 | 2009/04/13 10:18 | Posted by 이스크라90
북항, 부산다운 고품격 해양문화공간으로 만들어야
이달말 재개발 사업자 공모 숲·바다·사람·첨단 공존
원도심 연계 부활의 날갯짓 민간 자율성 최대한 보장


 

부산항 북항이 부산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북항재개발사업(센트럴베이)을 통해서다. 개항 이후 133년 만이다. 북항은 주변에 바다가 있고 산도 있어 미항으로 불렸다. 그런 미항을 부산시민은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무역항으로 개발되면서 접근이 차단돼 잃어버린 공간으로 전락한 탓이다. 그 사이에 북항의 아름다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두운 뒷골목 이미지만 남았다. 그런 북항을 되돌려받는 만큼 부산은 잃어버린 100년만이 아니라 다가올 100년을 준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도심 속 자연의 재탄생

 
  부산항 북항재개발사업의 야경 조감도. 부산항만공사는 북항을 대도시 속에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건설한다는 목표로 민간사업자 공모에 나선다.
올해는 북항재개발사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다.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부산항만공사(BPA)가 사업대상지의 상부시설(상업·업무시설 및 주상복합건물) 공사를 맡을 시공사를 이달 말께 공모해 오는 9월 선정하기 때문이다. 시공사 선정은 BPA가 지난해 확정한 큰 틀의 개발계획(토지이용계획)에 콘텐츠를 채울 민간 사업자를 뽑는 절차다. BPA는 응모한 시공사가 제출한 제안서 가운데 북항재개발 이념에 가장 적합한 작품을 선정할 계획이다. 앞으로 5개월여의 기간에 부산의 미래 100년을 상징할 작품이 그려지는 것이다.

BPA가 구상하고 있는 큰 틀의 개발방향은 도시생활 속의 자연이다. 소음과 매연에 찌든 옛 모습을 털어버리고 잘 정비되고 세련된 거리를 시민이 걷고, 문화와 레저를 즐기면서 비즈니스와 부를 창출하는 첨단산업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BPA는 전체 부지 152만7247㎡ 가운데 118만2566㎡(77.4%)를 공공시설로, 34만4681㎡(22.6%)를 분양할 수 있는 유치시설로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유치시설 부지에는 상업업무 IT영상·전시 복합도심 해양문화 등이, 공공시설에는 복합항만 공원·녹지 해양센터 공공청사 등이 조성된다.

■부산다움을 찾아라

문제는 BPA가 그려놓은 이런 큰 틀의 개발구상에 만들어 넣을 콘텐츠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 신경을 써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BPA 재개발사업단 권소현 팀장은 "기본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민간의 자율성을 최대한 이끌어낼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항이 부산의 얼굴로 재탄생하는 만큼 '부산다움'을 찾는 게 중요한다고 지적한다. 잊혀져 가는 것을 현대적으로 복원해 "이것이 한국이고, 이것이 부산이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차별화가 관건이란 얘기다. 부산발전연구원 오재환 연구위원은 "사람이 많이 모이게 하려면 쾌적한 환경은 기본이고,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더해져야 한다"며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을 정비하는 등 원도심과 잘 연계하면 부산다움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산의 히트작품인 부산국제영화제와 같은 축제를 개발해 사계절 끊임없이 개최하거나, 남항 자갈치 광안대교 해운대 등을 오가는 작은 배를 정기 운행하는 것도 사람을 북항으로 끌어들이는 좋은 방안으로 지적된다. 여기에다 첨단항만, 첨단기술(IT) 등 산업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이 조성되면 비즈니스 인구도 모일 것이다. 한국해양대 남기찬(물류시스템공학) 교수는 외국의 성공 사례를 면밀하게 검토해 '부산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두바이는 전통 아랍풍에 현대 건축미를 잘 가미했고, 시드니는 밤이면 사람들로 붐비는 선술집과 같은 테마 공간을 적절히 개발했으며, 싱가포르의 센토사 섬은 바다조망 효과를 살린 모노레일을 설치해 이동수단을 관광명물화했다"고 소개했다.

■랜드마크, 시민적 합의가 중요

북항재개발사업의 가장 핵심지역은 인공섬, 즉 해양문화지구다. 13만7640㎡ 규모의 이 인공섬에는 부산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들어선다. 북항이 지향하는 전통성과 미래상, 개발이념이 담긴다. 인공섬 주변에 건설될 길이 1㎞, 폭 60m인 '빛의 수로'는 24시간 빛을 발산하며 랜드마크의 상징성을 돋보이게 한다.

어떤 랜드마크를 건설할 것인가. 이는 지금부터 설계하고 만들어야 한다. 롯데그룹은 1000억 원을 투자해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한 뒤 부산시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부산 정서상 오페라하우스보다 트로트하우스가 더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일부에선 부산이 야구도시인만큼 문화가 있는 돔구장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단순할 것만 같은 상징타워나 초고층 빌딩도 부산다움을 잘 표현하면 랜드마크로 건립될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이 고래수족관 해양자연사박물관 등과 같은 해양을 주제로 한 상징건물 건립을 주장한다.

문제는 상징성에 사업성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북항재개발사업은 사업비만 8조5400억 원이 필요한 거대한 프로젝트다. 상부시설(6조5000억 원)은 민자유치로 개발되지만, 하부시설 비용(2조400억 원)은 BPA가 유치시설 부지 대금 등으로 마련해야 한다. 수익성을 등한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시민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시민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자부심이 생기고 사랑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돼 사업성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는 것이다.

본지 '명품부산' 시리즈 자문단인 한국해양디자인협회 김영숙 부회장은 "북항이 품격 있는 해양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전문가와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동체적 연구, 협력이 필요하다"며 "특히 북항재개발은 육감테라피(육감치료, 육감만족)가 가능한 문화공간이 돼야 한다. 육감테라피 문화공간은 부산시민의 자부심이 결부되면서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정순백 기자
입력: 2009.04.12 20:14 / 수정: 2009.04.1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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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과 청관의 재발견

명품부산 | 2009/03/25 00:00 | Posted by 비회원

무관심에 묻혀 잠든 일본인 마을을 깨워라
초량일대 10만여평, 동서 350칸 남북 250칸
외국땅에 있던 日人거주지 흔적없이 모텔만

거리·건축 등 재현땐 日관광객 흥미 끌 것

 
 
 부산 동광동 2가 옛 일본영사관 일대. 왜관
 수장이 거주했다는 관수가를 비롯해 핵심 시설
 이 있던 자리. 가운데 계단은 120년이 넘었다
 고 한다. 강덕철 기자 kangdc@kookje.co.kr
부산에 지금 '왜관(倭館)'은 없다.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부산진역과 초량 사이의 '고관(古館)'이란 지명이 왜관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드물다. 공무원들을 붙잡고 물으면 '갑자기 웬 왜관?'하고 반문한다. 조선통신사는 축제를 하고 기념관까지 짓는다면서 왜관은 관심 밖이다.

"모르는 거예요. 관심도 없고요. 무지하다 해야지."
부산민학회 주경업(69·향토사학자) 회장의 일침이다.

왜관은 조선시대 대일 교역창구로서, 정치·외교·교
역·문화 다방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부산 원도심,
중구 동구의 시가 원형이 초량왜관에서 비롯됐고,
부산의 근대 물류가 여기서 싹 튼다. 부산포→절영
도→두모포→초량왜관 시대까지 430여년 간 존속
하고, 끝내 일본인 전관거류지로 재편돼 조선 식민지배의 교두보가 돼 버린 왜관. 기억과 기록을 새롭게 정리하면 왜관은 의미있는 역사자원으로 태어난다.
엔고 파도를 타고 몰려드는 일본인들을 잡아둘 수 있는 묘안도 여기서 나올 수 있다.


■조선속 저팬 타운
 
 
 1783년 변박이 그린 초량왜관도. 향토사료연구
 가 김한근 씨 제공
황사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용두산을 끼고 도는 부산 중구 동광동 뒷길. 속칭 일본책방 골목의 허름한 5층짜리 건물 옥탑방에서 주경업 회장은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만큼 부산을 아는 사람도 없다. 최근 그는 문화답사집 '부산을 배웁시다2'를 또 펴냈다. 식지않는 지역사 열정이다.

'초량왜관 터를 찾으러 왔다'고 했더니 "허허, 여기가 그 자리"라고 얘기한다. 듣고 보니 창문 너머로 용두산공원의 기슭이 바짝 다가와 있다.

-당시의 자취랄까 유적이 있습니까.
"개념도, 생각도 없는데 뭐가 남았겠어? 이렇게 중요한 역사를 챙기질 않으니… 쯧쯧."

-초량왜관이 왜 중요합니까.
"왜관만큼 생생한 한일관계사가 없어요. 일본 아닌 외국땅에 있었던 유일한 '일본인 마을'이었고요. 초량(草梁)은 지금 초량이 아니예요. 옛날 용두산 일대에 띠풀이 많아 그렇게 불렀어. 조선 태종7년(1407) 부산포에 왜관이 들어서고 절영도·두모포왜관을 거쳐 1678년 초량왜관이 열려요. 왜놈들이 끈질기게 요구했던 거라."

-규모가 어느 정도였고, 누가 지은 겁니까.
"용두산 일대 10만 평에 어마어마한 일본인 마을이 들어선 거예요. 동서 350칸, 남북 250칸이라 했지. 대마도에서 온 목수 미장이 잡역부 등 150여 명과 조선목수, 인부 등이 합작한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라고 해요. 일본풍의 다다미, 화장실, 목욕탕도 이때 들어와요."

-왜관 수장의 거처라는 관수가(館守家)는 어딥니까.
"이럴 게 아니라 나가봅시다."


■모텔로 바뀐 관수가 자리

광복동에서 동광동 부산호텔 쪽으로 가다 보면 용두산 타워가 보이는 계단을 만난다. 이 일대가 초량왜관
의 심장부다. '구 일본영사관 계단'을 토닥토닥 오르면 정면에 부촌식당, 왼쪽편에 아로마모텔이 나온다.
"아로마모텔이 바로 관수가 자리였고 주변에 왜관의 관가가 있었어요. 옛날 지도에 그대로 나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모텔 아니면 가게로 변해 있다. 주 회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구 일본영사관 계단'
을 가리킨다. "저게 120년이 됐어요. 부산 최고(最古) 계단일 걸. 이 부근에 왜관 역사관을 세워야 해요."

관수가는 개항기에 일제 관리관청사로 사용되다 일본 영사관에 자리를 내준다. 시간의 켜를 고스란히 안
은 계단은 여전히 건재하다. 폭 4m 가량의 육중한 화강암을 37개 단으로 돌다리 놓듯 정교하게 쌓아올린
모습에서 일제의 치밀함이 엿보인다. 관수가 일대엔 1879년 서양식의 일본 영사관이 들어선 후 이사청
(1905년), 부청사(1910년)가 한 시절을 이어갔다. 1738년 변박(卞璞)이 그린 '초량왜관도'를 보면 지금의
시가지 구획과 거의 맞아떨어진다. 이 파란만장의 역사 현장이 무관심속에 잊혀져가고 있다.

■이야기 창고를 열어라

1690년 어느 날, 네 명의 조선여인이 초량왜관에 들어가 일본인과 통정하다 적발된다. 조선 조정은 당사
자는 물론 중개자까지 사형시켰으나, 일본 측은 본국으로 추방하는 선에서 그친다. 양국 간 외교마찰이
생긴다. 이른바 교간(交奸)사건이다. 당시 초량왜관은 철저한 금녀(禁女)구역이었다. 이곳에 머무는 일
본인들은 원초적인 성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사건이 계속 일어나자 양국은 1711년 통신사의 일본 방문
을 계기로 시묘약조 3개조를 체결한다. 조선 여인과 일본인들의 정사를 방지한다는 것 등이 약조의 골자
다. '숙종실록'에는 '왜관의 일본인이 초량촌을 몰래 드나들면서 부녀자와 간음하여 동래와 부산의 주민
가운데 일본인 아이가 많다'고 적고 있다. 왜관의 영향으로 당시 부산과 김해에는 일본식 접부채를 소지
하거나 스끼야끼를 먹는 풍조, 일본식 도박이 성행하는 등 '왜류바람'이 불기도 했다.

왜관의 우두머리인 일본인 관수(館守)들은 주요한 사건 사고들을 일기로 남겼다. 여기엔 사형도 막지
못한 밀무역과 교간, 각종 도난사건, 음식교류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18세기 후반엔 호랑이
2마리가 왜관의 담장을 넘어 들어왔는데, 거주인들이 창과 총으로 제압해 고기로 먹었다는 얘기도 나
온다.
 
■역사 무대 뒤의 '열린 공간'

일본 게이오대학의 다시로 가즈이(田代和生) 교수는 일본인을 '가둬두기 위해' 조선 정부가 설치한 왜관
이 오히려 일본인과 조선인 간 문화와 정보교류의 '열린 공간'으로 기능한 점에 주목한다. 지난 2006년
국내에 번역된 다시로 교수의 '왜관, 조선은 왜 일본사람들을 가두었을까'(논형)에는 도쿠가와 가문의
8대 쇼군 요시무네(吉宗)가 조선의 동·식물을 낱낱이 조사하고, 나중엔 막부의 위장된 해외첩보기관으로
활용했다는 왜관 이면사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왜관 연구자인 부산대 김동철(사학과) 교수는 "왜관 관계 유적이 별로 없어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옛 지도들이 많아 모형 재현이 가능하고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엮을 수 있다"면서 "동광동
이나 제2롯데월드 같은 곳에 왜관 박물관이나 역사관을 만들면 의미있는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
다. 왜관을 소재로 한일 공동작품을 만드는 것도 시도해봄직하다.

일본에도 왜관 비슷한 것이 있다. 규슈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상관이다. 네덜란드인들이 교역하며 머
물던 곳인데, 5000여 평 규모로 초량왜관(10만 평)과 비교가 안된다. 나가사키시는 이미 그곳을 관광명소
로 만들어 외국인을 끌어들이고 있다.잠자는 왜관을 깨워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한다.


◆ 120년 청관거리도 가꿔야 보배

- 화교의 삶과 터전은 관광테마…그들부터 보듬어야

 
  동구 초량동의 상해거리. 강덕철 기자
부산 동구 초량동 차이나타운(청관거리)내 중국집 일품향 옆 주차장에는 '숨은 역사 그림'이 하나 있다. 개항 초기 매립되기 전의 부산항 부두벽 흔적이다. 동구청이 주차장으로 만들면서 덮어 두었다는데, 역사문화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다.

개항 초기 부두벽이 이곳에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구한말 청나라의 배가 부산항에 들어와 1884년 청국영사관이 세워졌고 주변에 중국(청국)사람들의 점포를 겸한 집들이 지어졌다. 초량1동 지금의 중국 화교학교 자리다. 청관거리는 여기서 비롯된다. 해방 이후 이곳에 미군이 진주하면서 텍사스 골목으로, 1980년대엔 러시아 상가거리로 변모했다. 부산항 개항 120년 역사가 이 곳에 녹아있는 셈이다.

청관거리가 화교(華僑·중국에서 해외 각처로 이주하여 경제·사회활동을 하는 중국인 또는 그 자손)들의 터전이란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남아 등지에서 화교가 경제적으로 성공한 것과 달리, 한국의 화교들은 핍박 속에 혹독한 대접을 받았다. 한때 수만 명을 헤아렸던 부산의 화교는 뿔뿔이 흩어져 지금 2000여 명이 남아 있다. 부산화교협회 유구민(48) 사무국장은 "부산 화교들은 대부분 일제시대 산둥반도에서 건너왔으며, 남은 2세대는 사실상 부산사람이 됐다"면서도 "교육문제나 아이들의 휴대전화 사용 등에 있어 차별이 존재한다"고 토로했다.

한국해양대 김태만(동아시아학과) 교수는 "화교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엄청난 역사 문화자원이 될수 있
다"면서 "청관거리의 역사가 말해주듯, 이들의 삶과 현실 자체가 테마관광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의
미"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시야를 넓혀 화교 역사관 같은 것을 만들면 중국 관광객들이 큰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다국적·다문화가 만나 해물탕처럼 섞이는 텍사스촌의 관광부흥 전략이 될 수 있다. 화교를 달리 보
면 실마리가 풀릴 것도 같다.
박창희 이노성 기자 chpark@kookje.co.kr

  입력: 2009.03.2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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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신굿과 고니

명품부산 | 2009/03/16 00:00 | Posted by 비회원
부산 동해 별신굿 거점… 세계무대 굿판 벌여라
기장 일대 어촌 원형보존 국내 몇 안되는 사례로
말 안 통하는 외국인들도 무악 장단에 어깨 들썩
문화 콘텐츠 경쟁력 충분..어촌별 정리 선행돼야


 
  지난달 부산 기장군 칠암마을에서 펼쳐진 동해안 별신굿. 기장 별신굿은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보존 전승되는 모범 사례로 꼽힌다. 사진 제공=기장군
무녀 김동언(여·55) 씨의 구성진 사설(가사)에 포구가 긴장했다. 소리를 지르다가 달래다가 웃기고 울리면서 굽이굽이 이어가는 사설. '가는 고기랑 손을 치고/ 오는 고기랑 눈을 감아/ 윗물칸도 채우고 곳물칸도 채우고…'.

그녀는 5박 6일간 무려 26거리를 풀어냈다. 초인적인 무창(巫唱)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악(巫樂)이 무창을 따라갔다. 함께 자리한 관객들의 어깨도 들썩거린다. 포구의 뱃전에는 오색 깃발들이 나부꼈고, 하늘에는 애드벌룬이 띄워졌다. 축제였다. 지난달 9~14일 부산 기장군 칠암마을에서 펼쳐진 '기장 동해안 별신굿'은 이렇게 끝이 났다. 칠암마을에는 한달 전 굿판의 여흥이 엷게 남아 있었다.

■굿의 신통한 생명력
'별신굿'은 마을 공동체가 치르는 굿이다. 매년 지내는 동제와 달리 1년 혹은 2~3년, 또는 10년 단위로
무당집단과 마을 공동체가 함께 판을 펼친다. 동해안 별신굿은 강원도 최북단 거진에서 강릉, 경북 영해
, 포항, 울산, 부산까지 동해안에서 벌어지는 별신굿을 말한다.

1970년대까지 부산은 물론 동해안의 어촌에선 거의 빠짐없이 별신굿이 열렸다. 그러나 급속한 도시화와
어촌 인구의 감소, 굿(무속)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으로 별신굿은 우리에게서 멀어져갔다. 별신굿이란 용
어도 풍어제·용왕제 따위로 바뀌었다. 핍박받고 소외당하면서도 별신굿은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 1985년
마침내 중요무형문화제(제82호-가호)로 지정된다. 국가에서 민속으로 인정한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인 동해안 별신굿 전수 조교인 김동열(왼쪽) 김동언 부부.
동해안 별신굿은 김석출(2005년 작고, 생전 기능보유자) 선생 사후, 그의 가족을 중심으로 세습되고 있다. 김석출 선생은 당대 최고의 무당(무악 반주)이었다. 그는 부인(김유선)과의 사이에 1남 9녀를 두었는데, 현재 세 딸과 사위, 조카 등이 기능보유자 또는 전수 조교로 무업(巫業)을 잇고 있다.

■부산은 별신굿의 거점
올해 기장 별신굿을 주도한 무녀 김동언 씨는 김석출 선생의 셋째 딸이다. 13세에 동해안 별신굿에 입문, 40여년 간 크고 작은 굿을 해왔으며, 그의 남편(김동열·58)과 함께 전수 조교이다. 세습무(조상 대대로 무업을 이어받아 형성된 무당의 학술적 명칭)가 드문 현실에서 이들의 존재는 돋보인다. 지난해 10월 지리산 화엄사가 마련한 '화엄제'에 초청된 김동언 씨는 빼어난
무창으로 관객의 혼을 뺐다. 일본도 자주 왔다갔다 한다. 올 가을에는 영국 '공연'이 예약돼 있다.

기장군 기장읍 교리 '동해안 별신굿 보존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 씨 부부는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다.
"일(굿)이 많아야 생계 걱정 않고 보존 전승이 될 텐데 그게 쉽지 않아요.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라고
하지만 아직 전수관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창이 어려워요. 민요나 판소리꾼들도 따라부르기 힘듭니
다."(김동언 씨)

"사물놀이 귀재인 김덕수 패도 저희 장단을 흉내내지 못할 겁니다. 세존굿 할 때는 최고 35박까지 들어
갑니다. 그만큼 묘미가 있고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김동열 씨)
'동해안 별신굿 보존회' 사무실이 기장에 있다는 것은 부산이 거점이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부산시는 별
관심이 없다.

■용케 살아남은 전래 민속
기장 별신굿은 용케도 살아남은 몇 안되는 별신굿이다. 마을별로 따로 열어오던 것이 지난 2006년부터
통합됐다. 기장군이 연간 2000만 원을 지원키로 하면서 6개 어촌(대변, 칠암, 학리, 이천, 공수, 두하)이
매년 돌아가며 개최하게 된 것이다. 올해 열린 칠암마을 별신굿은 1800년 초에 시작되어 3년마다 치러
졌는데, 1960~70년대를 지나며 15년 가량 중단됐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풍어제'란 이름으로 되살아
났다.

기장 6개 마을은 매년 11월 마을 통합회의를 열어 별신굿을 기획하고 준비한다. 협력 체제를 통해 별신굿
이 전승되는 독특한 구조다.

한보용(64) 칠암어촌계장은 "원래는 어민들만 했는데 최근엔 유관기관과 전 지역민들이 참여하는 축제
처럼 됐다"면서 올해는 6일 간 2000여 명이 찾았을 정도로 외지인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부산시립박물관 유승훈 학예연구사는 "기장 별신굿은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전승되는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면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형식을 찾으면 관광자원화의 방향이 나올 것"이라
고 분석한다.

부산에는 기장 외에도 민락동, 영도, 자갈치, 청사포 등에서 별신굿(풍어제)이 열리고 있다. 제의 형태는
제각각이다. 문화전문가들은 "부산의 별신굿부터 정리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 콘텐츠적 요소 가득
김석출 선생의 맥을 잇고 있는 김동열 씨는 "얼마 전 일본에서 초청 굿판을 열었는데 일본인들의 관심이
의외로 컸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무악 장단에 어깨를 들썩이면서 즐거워했다"며 판만 잘 꾸미면 외국
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말했다.

굿을 활용해 성공적인 문화콘텐츠로 만든 사례는 많다. 강릉 단오제(단오굿)는 굿을 근간으로 한 종합 전
통축제로서 지난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록됐다. 단오제는 삼한시대 동예의 '무천(舞天)'
에서 기원하며 대관령 산신에 제사지내는 등의 무속신앙이 원형이다. 과천한마당축제도 우리 민족 고유
의 전통연희인 굿을 독창적으로 수용해 꾸미는 공연예술제다. 연출가 이윤택 씨의 출세작 '오구-죽음의
형식', 부산연극제작소 동녘의 '바리데기' 등은 굿을 연극화해 성공한 사례들이다.

국립민속박물관 김창일 전문위원(전 부산경남민속문화연구소장)은 "굿판에는 춤과 노래, 다양한 장단과
선율, 재담과 장편의 이야기(서사무가), 화려한 복식 등의 볼거리가 가득하다. 무엇보다 동해안굿의 경
우 놀이성, 축제성, 생명성, 밝음, 산사람 중심, 지역공동체 중심의 건강성을 갖고 있어 문화 콘텐츠로 활
용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부산문화관광축제 조직위원회 서영수 사무국장도 밝은 전망을 내놓는
다. 그는 "굿 문화가 시베리아 몽골 한반도 일본 필리핀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동양의 모든 굿을 모
아 문화상품화하는 방향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중심은 당연히 해양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이
된다. 울산의 처용제에서 보듯, 굿 형식을 섣불리 축제화할 경우 사회 일각의 반발도 예상되는 만큼 치밀한
전략 하에 콘텐츠를 다듬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흔해빠진 부산市鳥 '갈매기'

- 낙동강 찾는 '고니'로 바꾸면 도시브랜드화 가능

 
  낙동강 하구에서 고니가 날아오르고 있다. 국제신문DB
부산시 시조(市鳥)는 갈매기다. 끈기 있게 먼 뱃길을 따라 하늘을 나는 갈매기의 강인함이 부산 시민의 정신과 부합한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부산갈매기'가 부산의 상징적 이미지로 굳어진 측면은 있으나, 시조로서의 갈매기는 차별성이 없고 매력적이지도 못하다. 갈매기를 시조로 삼은 도시만도 마산시 통영시 포항시 동해시 여수시 보령시 등 여러 군데다.

시조를 바꾼다면 고니가 적격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고니, 특히 큰고니는 천연기념물 제201호로서 세계적 희귀조인데다, 한국에 오는 고니 중 70% 가량이 낙동강 하구에서 월동한다. 환경부 센서스와 '습지와 새들의 친구' 조사에 따르면 낙동강 하구에는 매년 2000~3000마리의 고니가 찾아들어 겨울을 나고 있다.
이 새들은 통상 10월 중순쯤에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다음해 3~4월에 돌아간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 천성광 사무처장은 "별 특징 없는 갈매기를 시조로 하느니보다 고니를 시조로 만들
면 낙동강 하구를 생태관광지로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면서 고니 맞이와 환송제 행사를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조를 바꾼 사례도 있다. 전남 순천시는 순천만을 브랜드화 하기 위해 2007년 초 시조를 비둘기에서
순천만을 대표하는 철새인 흑두루미로 교체했다. 이후 순천시는 흑두루미 국제 심포지엄도 열면서, 순천
만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하는 작업을 펴고 있다. 적극적인 행정 마인드가 도시 브랜드를 높인 사례
다. 
박창희 이노성 기자 chpark@kookje.co.kr

  입력: 2009.03.15 20:59 / 수정: 2009.03.1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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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의 흔적을 관광상품으로

명품부산 | 2009/03/10 00:00 | Posted by 비회원

곳곳 수많은 전쟁상흔도 새로운 관광 테마 자산
왜구침탈, 임진왜란, 일제수탈, 6·25…전쟁 상흔

왜성 왜관 등 역사체험 상품을 만들 역발상 필요

 
  부산 동광동 '40계단 문화거리'에서 향토사료연구가 김한근(왼쪽) 씨와 이영근 씨가 한국전쟁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40계단 층층대 중간에 '아코디언맨'이 앉아 있다. 박창희 기자
부산은 전쟁을 딛고 선 도시다. 멀리는 가야·신라의 영토전쟁부터 시작해 고려시대 이래 왜구의 침략과 참혹한 임진왜란, 일제의 대동아전쟁, 동족상잔의 6·25까지 많은 전쟁을 겪었다. 부산은 임진왜란 때 최전방이었고 6·25때는 최후방이었다.

전흔(戰痕)은 곳곳에 남아 있다. 동래 복천동고분과 동래읍성, 서구 부민동 임시수도기념관, 중구 동광동의 40계단 그리고 용두산, 국제시장, 영도다리…. 이러한 전흔은 유적으로, 삶의 현장으로 남아 오늘날 부산의 유전자 혹은 정체성이 되고 있다.

많은 전쟁만큼이나 평화의 표징도 적지 않다. 한일 우호의 상징인 조선통신사들은 반드시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들어갔고, 양국은 '왜관'을 통해 교역질서를 만들어갔다. 6·25 참전 전사자들을 위한 유엔기념공원(남구 대연동)과 2005년 APEC 정상회담이 열린 해운대 '누리마루'는 세계가 인정하는 평화 공간이다.

전쟁과 평화라는 모티브로 부산을 보면 의외로 많은 이야깃거리와 교훈을 얻게 된다. 이른바 '다크 투어
리즘(Dark tourism, 역사교훈관광)'이다. 이 부분에서 부산은 세계 어느 도시 못지않은 의미있는 자산을
갖고 있다.


■번지수 바뀐 영선고개
'40계단'(부산 중구 동광동) 층층대는 언제 가봐도 애처롭다. '경상도 아가씨' 때문이다. 계단 밑의 기념
석 뒷면에 노래가사가 적혀 있다.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우는 나그네/울지말고 속시원히 말좀하세요….'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40계단 중간쯤에 앉은 '아코디언맨'이 반주를 해준다. 전쟁시절의 애환과 궁상을
이야기하는 조형물들도 따뜻하게 다가온다. 뻥튀기 아저씨와 지게꾼, 물동이를 인 아낙 등은 모두 동포들
이요, 이웃이다. 먼지와 포연 가득한 '도떼기 시장(구호물자 시장)'이 키치적 상상에 실려 동화로 핀다.

두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 김한근 씨(51)와 이영근(80) 씨. 김 씨는 향토사료연구가이고, 이 씨는 동광동
동장을 지낸 중구 토박이다. "전쟁과 평화라…. 영선고개를 봐야 하겠네요."

-이곳은 언제부터 40계단이라 불렀습니까.
"원래 영선산(일명 쌍산)이 있던 자리라서 계단이 많았어요. 착평공사를 하면서 소라계단, 반달계단하는
것들이 생겼고요. 40계단은 부산역에서 지름길로 오면 바로 닿습니다. 6·25때 피란민들이 들끓었던 곳이
기도 했고요. '경상도 아가씨'란 가요가 40계단을 전국에 알렸어요."(이영근 씨)

동광동 인쇄골목길을 따라 영주동 쪽으로 걷는다. 일본인들이 쌓은 축대와 가옥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김한근 씨가 동광동 5가 1번지의 공터에 있었다는 '부산대교 희생자 위령탑' 자리를 짚어준다. 영도다리
공사 때 숨진 조선인 16명을 기리는 탑이 있었던 자리란다. 김 씨는 "영선고개는 지금의 인쇄골목길을 말
하며 부산항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면서 "현재 보수동 책방골목 입구~메리놀병원 앞 도로를 영선고개
라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사라지는 근대 자취
동광동에서 영주동 쪽으로 접어드는 내리막. 이영근 씨가 뭔가를 발견한듯 일행을 부른다. "저거야. 그
유명한 장춘(長春)여관이에요. 일제 때 지어져 자유당 시절 고관대작들이 부산 오면 머물던 곳이지."

허름한 ㅁ자형 가옥이지만 내력이 깊다. 가옥을 살피고 있으니 이웃 주민이라는 이모(70) 씨가 내력을 설
명해준다. "유명하다마다. 부지가 120평 정도되는데, 70년대 초까지 영업을 했어요. 그 후로는 주인이 살
았고 최근엔 영화촬영 무대로도 이용됐어요. 그런데 곧 헐린다고 해."

이 씨의 집도 원래 적산가옥이었는데 90년대 중반 연립주택으로 고쳐 지었다. 집 짓기 전 일본에서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이 씨가 주섬주섬 얘기했다.

"아 글쎄, 우리 집에 일제 때 그 일본인 영감이 살았던 거라. 이름이 다까마스라고 했지 아마. 찾아올 때
나이가 여든쯤 됐는데, 옛날 지도와 사진을 들고 왔더라구. 여기서 아들을 결혼시켰다고 하더군. 지금은
오사카 공무원이래요. 30여년 살았던 옛 동네가 그립다면서 이리저리 한참을 돌아보고 갔어요. "

대동아전쟁 막바지에 일본군은 동광동 영주동 산기슭에 요새사령부를 설치했다. 원주민들이 쫓겨났고 그
자리에 일본 군속이 자리잡았다. 그후 패전으로 쫓겨나면서도 일본인들은 '부산 복귀'를 믿었다고 한다.
다까마스라는 사람도 그렇게 믿은 한 명이었을 것 같다.


■'부산 속 일본' 발굴
가야시대 이후 일본은 왜·왜구·왜적·일제 등으로 얼굴을 바꾸며 줄곧 부산을 두드렸고, 지금까지 애증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최근 환율 급등으로 엔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일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자갈치나 국제시장, 시내의 면세점 등을 돌며 부산을 탐식하면서도, 볼거리·즐길거리엔 허기를 느낀다.

"복천동고분이나 동래읍성 그리고 왜관, 왜성같은 곳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사람들은 역
사체험을 좋아해요. 유적과 온천, 동래파전 등을 엮어놓으면 인기를 끌 겁니다."(권만우 경성대 디지털콘
텐츠학부 교수)

'부산 속 일본'을 팔아먹자는 얘기였다. 우리가 당한 아픈 역사를 숨길 게 아니라, 당당히 드러내 관광상
품화함으로써 실리를 얻자는 지적이다. '부산 속 일본' 유형의 콘텐츠는 널려 있다. 부산은 임진왜란 때
첫 격전지로서 왜군이 7년가량 주둔한 곳이다. 왜군은 구포와 김해 죽도, 기장 죽성리 등 11곳에 성을 쌓
았다. 왜군의 부산진-동래성 진격과 잔혹한 만행, 당시 조선인의 의병활동 등을 알려주는 '다크 투어리
즘'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를 위한 정교한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평화도시의 꿈
부산 최고의 사찰인 금정산 범어사에는 흥미로운 창건 설화가 전해진다. '신라 흥덕왕 10년(835), 동남해
안에 10만여 척의 배를 거느린 왜구가 나타났다. 그때 왕의 꿈에 신인이 나타나 "의상대사로 하여금 금정
산에 가 기도하게 하면 왜구가 물러난다"고 했다. 그렇게 했더니 과연 왜구가 물러났다. 이를 기려 범어
사가 세워졌다….'

왜구를 기도로 쫓아냈다는 것은 평화의 원력(願力)이다.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에 범어사 승려들은 승병
으로, 독립운동가로 나서 싸웠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평화의 사절인 조선통신사가 출발한 곳도 부산이다. 통신사 일행은 부산 동구 영가대에서 해신제를 지내
고 대장정의 돛을 올렸다. 조선 영조때 통신사 정사였던 조엄은 일본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발견해 종자
를 비선(일종의 연락선)을 통해 절영도(영도)에 보냈는데 이것이 전국에 퍼졌다.(아쉽게도 '조엄 고구마'
는 부산이 아닌 그가 죽은 강원도 원주에서 브랜드화 하고 있다)

유엔기념공원은 부산의 평화 이미지를 세계화하는 텃밭이다. 1951년 1월 유엔군 사령부가 처음 조성한
후 1959년 유엔과 한국 간에 협정이 체결되어 유엔기념공원이 되었다. 부지가 4만5000평이며 11개국
2300명이 안장돼 있다. 손길현 유엔기념공원 행정실장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인 만큼 인근의 부산
박물관과 문화회관 등과 연계하면 의미있는 관광코스가 된다"고 말했다.

부산명예시민으로서 유엔 등에서 평화운동가로 활동하는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이승헌 총장은
"부산은 지정학적으로 평화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국제평화회의'같은 것을
창설하면 도시 브랜드를 한껏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임시수도 기념거리 부민동에 조성 추진(기념관~ 동아대박물관)

 
 
옛 영선고개(현 동광동 인쇄골목길)에 자리한
장춘여관. 자유당 시절 고관대작들이 묵었다는 곳.
지난 6일 찾아가 본 부산 부민동 임시수도기념관은 한산했다.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전시품을 보완했다는 데도 찾는 사람은 하루 150명 정도라고 했다. 이곳은 6·25 전쟁 당시 약 3년간(1950∼1953)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관저로 사용한 시설(부산시 기념물 제53호)이다. 기념관 1층에는 이 대통령의 집무실과 서재, 2층에는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입던 양장이며 한복, 식기, 세숫대야 등을 전시해 놓았다. 손대면 켜지는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는 영상물이 볼만하다.

인근의 임시수도 정부청사(등록문화재 제41호)는 동아대박물관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1925년 경남도청사로 건립됐는데 르네상스 양식의 붉은 벽돌이 인상적이다. 때맞춰 서구청은 임시수도기념관~동아대박물관 사이 500m를 '임시수도 기념거리'로 조성할 계획이다. 옮겨온 동아대 부민캠퍼스가 지역상권을
살리면서 관광객까지 불러모을 조짐이다.

부산근대역사관 이해련 관장은 "지금까지 해온 근대유적답사를 발전시켜 올해는 임시수도기념관(기념거
리)-동아대박물관-백산기념관-세관박물관-40계단 문화관-민주공원을 잇는 '박물관 투어'를 해볼 계획"
이라고 말했다.

박창희 이노성 기자 chpark@kookje.co.kr

  입력: 2009.03.0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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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와 최치원

명품부산 | 2009/03/10 00:00 | Posted by 비회원
'해운대' 브랜드 가치 충분…놀거리·볼거리 채워라
특색있는 공간은 없고 거리엔 술집, 모텔만 즐비해
인프라 훌륭하나 콘텐츠 부족, 무분별 개발 지양을


 
  해운대 바다의 색깔이나 분위기는 다른 바다와 확실히구별된다. 해운대의 관광·컨벤션·영상·쇼핑·해양레저 인프라는 명품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이다. 박창희 기자
해운대는 부산 사람보다 외지인들이 더 잘 안다. 부산하면 떠오르는 첫째 이미지도 해운대다. 어떤 면에선 '부산'보다 더 흡입력이 강한 브랜드다.

해운대가 가진 문화·관광·비즈니스 인프라는 다채롭고 다이내믹하다. 산(장산) 바다(해수욕장) 강(수영강, 춘천) 온천이 있고, 벡스코와 쇼핑몰, 특급호텔 갤러리 영화관 등 각종 문화인프라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다. 3일 개장되는 '신세계 센텀시티점'은 백화점과 온천이 결합된 리조트형 복합쇼핑물로, 또 하나의 해운대 명물이 될 전망이다. 관광특구(1994년 지정)에다 컨벤션·영상·해양레저특구(2005년 지정)라는 지위까지 얻고 있으니, 도약의 틀은 모두 갖춘 셈이다.

그렇다면 해운대는 '명품'인가. 그러한 이미지가 충만한가. 답을 미루고 해운대의 정체성과 과제, 비전을 탐색해보자.


■'해운'을 찾아서

해운대란 이름에는 신라말의 대학자 최치원(崔致遠·857~?)의 문기(文氣)가 서려 있다. 자가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인 최치원은 12세 때 당나라에 조기 유학하여 문명을 떨쳤다.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이란 글로 난적을 제압한 얘기는 시공을 초월해 회자되는 전설이다.

 
  동백섬 등대광장 옆의 '海雲臺' 각석.
고국에 돌아온 최치원은 뜻을 펴지 못하고 '외로운 구름'처럼 전국을 주유한다. 그가 태어난 경주는 물론 함양, 합천(가야산 홍유동), 해운대(동백섬), 양산(낙동강 임경대), 지리산 쌍계사 청학동, 김제 귀신사, 의성 고운사, 강원도 홍성 등 전국에 걸쳐 그의 자취가 남아 있다.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모두 '문화'가 되었다. 어느 해 해운대 동백섬을 찾아 들어선 최치원은 망망대해를 굽어보며 암반에 '海雲臺'(해운대)라는 글을 새긴다. 동백섬 등대광장 아래엔 그때 새겼다는 각석이 남아 있다. 해운대란 이름은 여기서 비롯된다.

동백섬 정상에는 최치원 동상과 시비, 해운정이란 정자가 있다. 그러나 '해운'의 의미는 동상 주변에서만 맴돌고 있다. 주민들에겐 이 공간이 체육공원이며 외지인들에겐 지명유래담을 전해주는 장소일 뿐이다.


■탁 트인 '명품 바다'

해운대 바다는 다른 바다와 다르다. 동백섬 남동쪽의 해안 산책길로 내려가면 그 바다의 진면목을 마주한다. 보고만 있어도 막힌 가슴이 확 뚫린다. 송유미 시인은 해운대 바다에서 미래, 청춘, 나비를 찾아낸다.

"이곳 바다는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다르다. 그 다음날 새벽에 오면 또 다르다. 봄비 오는 날, 해운대는 요술바다가 된다. 그 어떤 화가도 그리기 어려운 신의 바다, 미래가 넘실대는 바다, 청춘이 춤추는 바다, 나비가 건너는 바다가 된다."

해안 산책로를 돌아 누리마루 옆 등대광장에 이르면 오륙도가 코 앞에 다가온다. 이곳에 서면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경치가 곱고 부드럽다. 여기서 보는 광안대교는 멋진 경관을 선사한다.

즐거움은 여기까지다. 광안대교에서 시계 방향으로 시선을 옮겨오면 센텀시티, 마린시티라 불리는 신흥개발지를 보는데 스카이라인이 너무 요란하다. 수영만 매립지에 들어선 마린시티의 초고층 아파트 단지는 누굴 위해 저토록 높이 섰는지 의문이 든다. 바다에 핀 한송이 동백같은 동백섬과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 조합이다.


■"좋다" vs. "좋기는 뭐~"

전문가들이 해운대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살기 좋은 곳이다. 충분히 명품도시가 될만하다." "과대포장 됐다. 난개발이나 막아달라."

이같은 상반된 시각은 해운대가 갖는 장점과 단점, 바꿔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부경대 김명수(디자인학부) 교수는 "해수욕장과 동백섬, 특급호텔 등 이미 구축된 관광 인프라가 좋다. 센텀시티를 중심으로 영상·컨벤션·쇼핑 분야의 새로운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명품도시의 그림이 그려진다"고 말했다.

반면 '해운대를 사랑하는 모임' 서세욱 회장은 "해수욕장과 특급호텔이 무슨 큰 자랑거리냐. 하루만 둘러 보면 볼 것이 없다고 한다"면서 "혁신적 마인드로 겉과 속을 일류로 바꾸지 않으면 국제적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해운대에 부산적인 요소와 차별화된 문화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뒷골목을 가 보면 온통 식당과 모텔이다. 부산디자인센터 김재명 원장은 "외국인들은 호텔이나 바다를 좋아하기보다 부산 정취와 냄새가 풍기는 뒷골목의 술집이나 전통 문화공간을 가 보고 싶어한다"며 관광전략을 마련할 때 골목문화 개념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브랜드로 승부를

해운대는 대중적 인기가 높다. 손인호의 '해운대 엘레지', 전철의 '해운대 연가'는 해운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준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해운대 동백섬을 영원히 '꽃피게 만든' 국민 가요다. 이만한 문화적 브랜드가 형성된 곳은 전국적으로 흔치 않다.

해운대구는 2007년 문화도시에 이어 2009년 디자인도시를 선포했다. 달빛을 활용한 걷기행사인 문탠로드(Moontan-Road)와 달빛음악제, 모래축제, 북극곰 수영대회, 장산제 등은 컬처노믹스가 가미된 해운대의 축제 콘텐츠들이다. 해운대의 변화 움직임들이다.

PIFF(부산국제영화제)와 벡스코, APEC 정상회담이 열린 누리마루의 덕도 톡톡히 보고 있다. 벡스코는 지난해 행사 633건, 국제회의 48건을 소화했다. 동백섬 누리마루는 지난해 123만5837명이 구경했고, 요즘도 평일 2300명, 주말 6000여 명이 찾고 있다. 부산아쿠아리움은 지난해 96만 명이 입장해 3년 연속 매출 100억대를 달성했다.

채수동 해운대구 문화축제팀장은 "제2벡스코와 영상센터(두레라움), 해양레저시설 등이 들어서면 해운대는 명실공히 관광 비즈니스 휴양도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명품 해운대가 되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않다. 무분별한 스카이라인과 가로의 간판, 조명 등이 정비돼야 하고, 볼거리·먹을거리·놀거리 콘텐츠가 더 채워져야 한다. 주민들의 친절함이나 영어 구사력도 떨어진다.

부산대 김기홍(경제학과) 교수는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컨벤션·영상·해양레저 특구를 무엇으로 채워야할까 고민하면 답이 나옵니다. 'PIFF+불꽃놀이+광안대교+해상유람선'을 하나의 패키지 상품으로 그랜드 세일을 하는 겁니다. 컨벤션시설과 호텔, 쇼핑몰이 받쳐주고 있으니 일체형 휴양상품이 됩니다. 영화제 기간을 겨냥, 브랜드 마케팅을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지 않을까요."

지난해 PIFF때 비슷한 상품이 선보이긴 했지만, 사람·돈·상품·정보가 오가는 지식서비스산업의 불꽃을 크게 피워보자는 제안이다.


◆ 중국에서 더 대접받는 최치원

 
  지난 2007년 초 중국 양저우시 최치원 기념관에서 진행된 동상 제막식. 해운대구 제공
해운대 동백섬의 최치원 자취를 찾던 중 경주최씨 부산종친회 최규식(67) 사무총장을 만났다. 최치원의 29세손인 그는 이곳의 유적비와 동상이 세워진 경위를 소상히 알고 있었다.

"최치원 선생 유적비는 1965년에, 동상은 1971년에 세워졌어요. 종친회가 십시일반 경비를 모았지요. 부지가 국방부 소유였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풀어주면서 금일봉까지 내린 거예요. 내로라는 정치인·관료들이 줄줄이 금일봉을 냈고요. 이곳 비문은 노산 이은상 선생이 썼어요."

최 사무총장은 "동상 뒤편의 배드민턴장을 없애야 하며, 훼손되고 있는 '해운대' 각석의 보호시설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경주최씨 부산종친회는 동백섬 해운정에 사무실을 두고 유적관리를 맡고 있다.

최치원은 세기적 역사 인물이다. 그가 유학 가서 5년 가량 관리생활을 한 중국 장쑤성(江蘇省) 양저우(楊州)시는 과하다 할 정도로 최치원을 띄우고 있다. 중앙정부 지원하에 동상과 기념관을 세웠고, 현지 TV는 최치원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영했다. 양저우 시민 중 최치원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한국측의 관심은 미약하다. 해운대구는 2007년 초 뿌리찾기 일환으로 '최치원 기념사업회'와 함께 양저우시를 방문, 최치원 동상 제작비(2500만 원)를 지원하고 현지에 해운대 홍보관을 마련했다. 동북공정에 데인 우리로선 중국의 최치원 띄우기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처지. 해운대구 관계자는 "중국측도 최치원이 신라 인물임을 인정한다"고 했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해운대구는 올해 '최치원 학술회의'를 열 예정이나 적극적이지는 않다. '최치원 기념사업회'도 해체된 상태다. 문화콘텐츠연구회 김종세 회장은 "최치원은 충분히 의미있는 역사·문화 콘텐츠로서 선점이 중요하다"면서 '최치원 연구소'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창희 이노성 기자 chpark@kookje.co.kr

  입력: 2009.03.01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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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 먹고 살 브랜드를 찾아라

명품부산 | 2009/03/10 00:00 | Posted by 비회원

PIFF·문탠로드·자갈치 등 原石은 풍족
콘텐츠 결합 세계 명소 키우기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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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부산 지식창조도시 브랜드 찾기 <1> 부산은 다이내믹한가
부산 해운대에서는 '달빛'이 자원이다. 무한한 달빛을 이용해 '문탠로드(Moontan Road)'라는 걷기행사를 만들었다. 문탠은 선탠(Suntan)에서 착안한 말. 문탠로드는 '달빛을 받으며 가볍게 걷는 길'이란 의미다. 배덕광 해운대구청장의 아이디어로 지난해 4월 처음 시작했는데 매달 400~600명이 참가할 정도로 호응이 높다. 코스는 미포에서 달맞이 어울마당까지 약 2.2㎞. 중간중간에 열리는 건강강좌, 기체조, 음악회 등도 인기다.

문탠로드는 한물간 줄 알았던 달맞이고개의 존재를 새삼 부각시켰고 해운대의 감성을 깨우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걷기 콘텐츠'를 좀더 확장할 수 없을까. 원폭 투하 도시인 일본 규슈 나가사키(長崎)시에 맞춤한 비교 사례가 있다. 2006년 4월에 시작된 나가사키 사루쿠 박람회다. 사루쿠(さるく)는 '어슬렁거리며 걷는다'는 뜻의 현지 사투리. 행사의 콘텐츠들을 보면 왜 박람회란 말이 붙었는지 알게 된다. '거리걷기'를 기본으로 볼거리+먹을거리+쇼핑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걷기코스만 42개에 이르고 '그 사람과 걷고 싶다' '여름 한정 납량 사루쿠' '신사에서 점보기'같은 특별기획까지 흥미로운 이벤트가 가득하다.

더 놀라운 것은 행사의 성과다. 행사기간 중 전체 관광객이 355만 명(숙박객 151만 명, 당일 귀가자 204만 명), 관광객 소비지출이 484억 엔,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총 865억 엔(약 1조2900억 원, 2007년 기준)에 달했다. 지난해 현지 조사를 했던 문화콘텐츠연구회 김종세 회장은 "사루쿠 축제는 지역의 역사 문화 자산을 어떻게 꿰어 보석으로 만드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나가사키시는 이밖에도 16세기 이후 중국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과의 교류 흔적을 복원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역자원의 브랜드화다. 인구 45만 명의 나가사키시가 그 8배의 관광객을 끌어들인 비결이 여기에 있다. 360만의 부산이 105만 명의 관광객(2008년 기준)을 끌어들인 것과 확연히 비교된다.

하지만 부산에도 쓸 만한 '브랜드 원석(原石)'이 많다는 게 본지 '명품부산 자문단'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해운대에 신라말 세계인이었던 해운(海雲) 최치원이 있고, 자갈치와 용두산 주변엔 왜관, 신사터 등 일본 자취가 남아 있다. 초량동의 청관거리와 화교도 달리 보면 관광 자원이다. PIFF(부산국제영화제)와 불꽃놀이·해상관광을 결합하는 방법도 있다. 임시정부기념관과 UN공원, APEC이 열린 누리마루를 연결하면 평화도시라는 산뜻한 그림도 나온다.

부산문화재단 강남주 대표이사는 "이런 브랜드 원석들을 꿰어야만 세계가 주목하는 '명품 부산'이 된다"고 말했다.
박창희 이노성 기자 chpark@kookje.co.kr

  입력: 2009.02.22 2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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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과연 다이내믹한가

명품부산 | 2009/03/10 00:00 | Posted by 비회원

명품부산 지식창조도시 브랜드 찾기 <1> 부산은 다이내믹한가

역동적 콘텐츠 많아 가공 잘하면 '대박'...수 십년 우려먹는 식상한 관광메뉴
바다·야구장 문화 등 경쟁력 있는 原石 제대로 살려내야 외국인 발길 붙잡아

 
 
 중국 상하이의 상징적 명품거리인 신천지. 상하이시가 전통 건축물의 원형을 되살려 서울의 로데오거리, 청담동처럼 꾸민 곳이다. 한낮에도 외국 관광객들이 북적거린다. 부산에도 이런 명품거리 하나쯤 만들 수 없을까. 상하이=박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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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 먹고 살 `브랜드`를 찾아라
"부산사람요? 다이내믹하죠. 사직구장에서 '부산갈매기' 부르며 신문지와 '봉다리'로 응원하는 거 보세요. 저게 바로 경쟁력 있는 콘텐츠예요."(권만우 경성대 디지털콘텐츠학부 교수)

사직구장에서 신문지는 팬들의 목소리와 마음을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전령사다. 2만~3만 명이 일제히 신문지로 만든 꽃술을 흔들며 환호작약하는 모습은 부산 사직구장의 상징적 풍경이 된 지 오래다. 롯데경기보다 '신문지 응원'을 보러 사직구장을 찾는 외지인도 많다.

프로야구 시즌이면 사직구장은 '초대형 테마파크'로 변한다. 진기명기의 춤과 노래, 각종 이벤트, 이야기와 수다 그리고 환호작약, 북적대는 맛집과 쇼핑 가게들…. 문화전문가들은 "야구 시즌 사직구장이야말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최전선이자 부산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역동적 현장"이라고 말한다. '다이내믹 부산(Dynamic Busan)'의 상징으로 손색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지속가능한 상품으로 만드느냐이다. 야구 시즌이 아닌 동면기를 어떻게 넘기고,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입히며, 열린 공간의 폭발적 에너지를 어떻게 자원화하느냐가 관건이다. 신문지 응원은 '캐내지 못한' 부산의 브랜드 원석(原石)이다.

'신문지 응원' 같은 원석이 부산에 꽤 있다. '자갈치 아지매'도 그 하나다. 항구도시 특유의 강인함과 푸근한 인정미, 가족애까지 품은 캐릭터는 결코 흔하지 않다. 자갈치 아지매들은 그 어떤 난관이 닥쳐도 의지만 있으면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문화콘텐츠연구회 김종세 회장은 "자갈치는 어느 정도 국제화돼 있는 브랜드인 만큼 자갈치 아지매가 갖는 인적 콘텐츠를 결합하면 흥미로운 휴먼 드라마가 탄생할 것"이라며 "하나의 예로 이들이 입는 '몸뻬'도 외국인들에겐 관광 콘텐츠가 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다이내믹함으로 볼 때 자갈치 아지매만큼 역동적인 콘텐츠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 빈약한 관광 콘텐츠

 
 역동적인 사직구장의 신문지 응원은 가장 부산다운 상품 중의 하나다.
해운대, 태종대, 용두산, 범어사, 광안대교…. 부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대체로 장소성이 강하다. 근래엔 부산국제영화제(PIFF)를 내세우기도 한다. 설문조사를 하면 늘 비슷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PIFF를 제외하면 수십 년간 오르는 관광 메뉴다. 레퍼토리에 변화가 없으니 장사가 잘 될 리 없다. 서울에서 오는 외지 관광객들에게 부산은 단순 경유지에 불과하다. 크루즈가 들어와도 당일 관광이 대부분이다. 지역 여행업계는 '서울빨대'에 애면글면한다. 서울의 메이저여행사들이 인바운드(외국인을 불러들임)-아웃바운드(내국인을 내보냄) 가리지 않고 지방관광을 요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방문객이 181만 명(순수관광객은 105만 명)이라고 하나, 부산에 떨어지는 실익은 미미한 수준이다. 관광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치밀한 분석자료(현재 용역중이라고 함)조차 찾기 어렵다. 영도의 크루즈터미널에는 아직 면세점이 없다. 부산시관광협회 강준구 부회장(진성관광 대표)은 "올해도 크루즈가 40대가량 들어온다고 하나 지역 관광업계에 떨어지는 것은 전세버스 임대료 정도"라며 볼거리·먹을거리·놀거리를 만들고 가이드를 육성하는 등 콘텐츠 확충이 절실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 부산의 신천지는?

서울이 그렇듯, 명품도시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신간 '명품도시의 탄생'(최은수 지음, 매일경제 펴냄)에는 명품도시의 요건을 '풍(豊)' '화(和)' '격(格)'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풍'은 돈과 상품, 인재가 자유롭게 오가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 '화'는 빈부 소득 교육 분야의 격차를 해소해 융화를 이루는 도시, '격'은 원칙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사회다. 저자는 명품도시 사례로 브라질 꾸리찌바, 일본 삿포로, 스페인 빌바오, 싱가포르, 한국의 창원 등을 들었다.

스페인의 소도시 빌바오의 신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빌바오시는 1997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해 명품도시로 점프했다. 1500억 원이 투입된 명품 미술관은 빌바오를 크게 변화시켰다. 빌바오시는 매년 130만 명을 끌어들여 연간 2000억 원의 관광수입을 올린다. 역발상과 생태적 사고, 시민의 친절이 낳은 성과다. 일리드 디자인연구소 김영숙 소장은 "빌바오 미술관은 어떤 선택과 사고가 도시를 바꾸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북항에 짓기로 한 오페라하우스는 적절한 선택일까. 경성대 권만우 교수는 고개를 젓는다. "오페라하우스는 웬만한 도시에 다 있어요. 차라리 '트로트 하우스'가 낫지 않을까요. 나훈아와 조용필 설운도 현철이 모두 부산이 낳은 트로트 대가들 아닙니까. 콘텐츠 차원에서 휠씬 매력이 있어요. 트로트에 일본 엔카를 심어놓으면 일본 관광객이 올 겁니다." 부산의 사고와 전략이 보다 유연해지고 다이내믹해져야 한다는 얘기였다.

부산디자인센터 김재명 원장은 중국 상하이의 '신천지'를 주목했다. 신천지는 상하이시가 전통 건축물의 원형을 되살려 서울의 로데오거리, 청담동처럼 초호화 명품거리로 꾸민 곳. 김 원장은 "부산에도 이런 신천지가 있어야 한다. 광안리나 해운대 혹은 센텀시티가 후보가 될수 있을지 모르지만, 치밀한 전략이 마련돼야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 어정쩡한 부산 슬로건, 다시 디자인해야
뉴욕을 갔다온 사람들은 대부분 'I ♡ New York'(혹은 'I♥NY')이라 적힌 티셔츠를 기념으로 사온다. 'I♥NY'은 1970년대 중반 첫선을 보인 이래 뉴욕을 상징하는 확고부동한 브랜드가 됐다. 이후 많은 도시들이 앞다퉈 차별화된 슬로건을 내걸고 도시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名品부산' 전문가 자문단
부산시는 지난 2003년말 시민공모를 거쳐 '다이내믹 부산(Dynamic Busan)'을 대표 브랜드 슬로건으로, 'City of Tomorrow' 'Asian Gateway'를 부제 슬로건(Sub-Slogan)으로 공식 선정했다. 이후 시민참여 이벤트나 문화관광 분야에 활용해 도시 브랜드 가치를 일정부분 높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브랜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더 이상 발전 없는 슬로건이 되고 있다. 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셈이다. 정부 차원에서 내걸고 있는 슬로건이 '다이내믹 코리아'란 것도 고민거리다.

이와 달리 서울시는 '하이 서울(Hi Seoul!)'이란 슬로건 아래 야심찬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서울시는 2007년 5월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시장 직속기구로 설치, 도시의 내용과 형식, 미래까지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다.
박창희 이노성 기자 chpark@kookje.co.kr

  입력: 2009.02.2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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