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여름 부산 천주교묘지에서 잡초를 헤치고 어렵게 찾아낸 안성녀 여사의 묘지(Copyright 국제신문).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100주년입니다. 학계에서는 안 의사의 독립운동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 시선을 돌려보면 안 의사가 지하에서 통곡할 일들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안 의사의 친여동생 묘지가 부산의 한 산귀퉁이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요.
4년 전 가슴 벅찬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인 안성녀 여사의 묘지를 발견한 것입니다. 부산 남구 용당동 천주교묘지에서 30분 넘게 잡초와 잡목을 헤쳤더니 '안누사아성여지묘'라고 적힌 묘비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안중근 의사는 천주교 집안이었습니다. 누시아는 안성녀 여사의 세례명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이 부산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때의 떨림과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역사학계는 물론 국가보훈처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허남식 부산시장과 몇몇 국회의원들은 안 여사의 묘지를 찾아 헌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안 여사의 며느리인 오항선 여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 여사는 생생한 육성으로 일제강점기 안 여사의 행적을 소상히 설명했습니다.
"시어머니(안성녀 여사)는 독립군들의 군복을 만들었다. 일본군에도 두 번이나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었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부산에 정착했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렇게 사시다 영면하셨다..."
오 여사 자신도 김좌진 장군 휘하의 독립군에 가담해 대일항쟁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애국지사이셨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손을 잡고 독립운동을 했던 겁니다.
오 여사의 집에는 안 여사의 생전 사진이 딱 한장 남아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아들 준생 씨의 장례식(1952년 11월 부산 중앙성당) 장면이었습니다. 사진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생 안정근 선생의 부인 이정서 여사와 준생씨 부인 정옥녀씨는 물론 안춘생 전 독립기념관장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오 여사는 이듬 해인 2006년 8월6일 97세의 나이로 시어머니의 뒤를 따라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안 여사의 독립운동 행적에 대한 증거가 없다며 서훈 작업을 중단해 버렸습니다. 가족들의 증언만으로는 그녀의 업적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 여사는 생전에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독립유공자 추서를 받자는 주위의 권유를 모두 뿌리졌어요. 조선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데 뭐하러 떠느냐고는 말씀이지요."
결국 어렵게 발굴된 안 여사의 묘지는 지금도 방치된 상태입니다. 언론을 통해 안 여사를 알게 된 지역주민들이 가끔씩 꽃다발을 놔두고 가는게 전부랍니다. 안 여사의 손자(안중근 의사의 조카)는 노동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안 여사의 묘지가 단장되지 못한 채 쓸쓸히 남아 있는 것은 국가로부터 그녀의 업적을 인정받는 서훈 작업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보훈처는 안 여사의 서훈 추진을 위해 그녀의 행적을 확인할 만한 자료 발굴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진술만으론 그녀의 업적을 입증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서훈 작업을 중단했습니다. 이게 우리나라 보훈행정의 현 주소입니다. 한 젊은 사학자의 말이 가슴 깊이 박힙니다.
"안 여사처럼 독립운동 행적이 자료로 남아있지 않아 서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매일 생사를 넘나드는 독립운동군들이 '나 독립운동하고 있소' 하고 기록을 남기겠는가. 믿을 만한 정황이나 증언이 있다면 우선 서훈을 수여하는 것이 순서 아닌가. 지금까지 안 여사의 독립운동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 아닌가..."
지금도 안 여사의 묘역은, 발길에 채이는 잡초마냥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안성녀 여사의 후손이 소장 중인 안중근 의사 아들 준생씨의 장례식 모습. 1952년 11월 부산 중구 중앙성당에서 치러진 이날 장례식의 사진에는 베일에 가려졌던 안성녀(원내) 여사의 실존 모습이 유일하게 나와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안 여사 왼쪽으로 안 의사 동생인 안정근 선생의 부인 이정서 여사, 안 여사 오른쪽으로는 준생씨 부인 정옥녀씨와 아들 웅호(현 미국거주긿의사)씨, 안춘생(전 독립기념관장)씨의 모습이 보이고 맨 오른쪽이 안 여사의 외아들 권헌씨이다. copyright 2005. All rights reserved by 국제신문
2009년 4월 다시 찾은 안성녀 여사 묘지. 주변의 잡초만 제거됐을 뿐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이곳 관리인은 다른 일반인들의 묘지보다 관리가 못하다고 안타까워 했다. 부산에 사는 안 여사의 후손들은 이 묘지를 국립묘지로 옮겨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다른 민간 공원묘지 이장도 부산시와 보훈처의 외면 속에 난항을 겪고 있다. copyright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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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 정말 감사 드립니다. 저는 안성녀할머니의 증손녀 입니다.묘지가 버려진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생활고에 다른 사람들 보다 많은 관심을 갖지 못한것은 사실이지만 기일이나. 명절에는 찾아 뵙고 하였습니다. 유난히 풀이 잘 자라다 보니 관리소홀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항선할머니의 생생한 증언으로는 다른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자랑스러운 분이십니다. 많은 관심 감사드리며 수고하세요.
이청이 쓴 '대한국인 안중근'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조선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아깝게 생각지 않으신 친인척을 돌보지 않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루 빨리 국가가 관리를 해 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