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병에 걸려 생사기로에 놓였던 부산경남경마공원의 경주마가 1년 만에 '천리마'로 탈바꿈해 화제가 되고 있다. 명마의 후손으로 귀한 대접을 받다가 하루 아침에 폐사의 위기에 몰렸던 말이 다시 최고의 경주마로 등극하기까지의 '마생역전(馬生逆轉)'을 소개한다.
내 이름은 '참좋은'. 혈기왕성한 세살배기 암말. 나는 요즘 행복하다. '비루먹은 말 뼈다귀'라고 조롱하던 사람들이 이젠 '천리마'라고 칭찬을 늘어 놓는다. "힘 좋게 생겼네"라며 섹시한 내 엉덩이를 툭 치는 경마꾼들도 많아졌다. 감히 숙녀 엉덩이에 손을 대다니. 하지만 기분은 좋다. 정말 마생(馬生)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우리는 중국 주나라 사람 백락(伯樂)을 가장 존경한다. 그는 말의 진가를 알아보는 재주를 지녔다. 필부의 수레나 끄는 천리마를 단번에 알아봤다. 아마 백락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면 수많은 우리 조상들이 평생 당나귀 신세로 살았을 터. 한자능력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나를 알아주는 주인을 만나야 세상에 나와 빛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현해탄을 건너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한국판 백락'을 만난 건 지난해 6월. 그때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몸무게도 350㎏에 불과했다. 경주마는 체중이 450㎏은 돼야 말 대접을 받는다. 뒷다리 한쪽마저도 아파 질질 끌고 다녔으니 누가 봐도 '경주마는 아니올시다'.
자존심이 상해 죽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가. 아빠는 통산 상금 14억원을 획득한 '오페라하우스'. 오빠 'T.M.OPERA O' 역시 18억원의 상금을 받은 명문가 혈통 아닌가.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다니. 내가 비루먹은 험악한 꼴이 된 건 일본에서 배를 타고 오는 사이 '산통'에 걸린 탓이다. 배앓이라고 불리는 산통은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치명적인 병이다.
많은 조교사들이 "혈통은 좋은데 어쩌다 저리됐나"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 나를 강제 폐사시킬까봐 얼마나 겁이 났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죽을 고비에서 날 구한 은인은 김영관(46) 조교사.
백락 선생처럼 나의 가능성을 알아본 것이다. 그는 자포자기한 나에게 매일 인삼과 메주콩을 먹여줬다. 얼음 찜질도 해줬다. 지구력 향상에 특효라는 마늘은 배 터지게 먹었다. 남자친구들이 마늘 냄새 난다며 싫어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내가 힘들어 할 때마다 김 조교사는 "꼭 살아야 한다. 자식보다 더 큰 공을 너한테 들였다"고 속삭였다. 왕방울만한 내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뻔 했다. 팔뚝만한 주사도 열심히 맞았고, 마구간이라고 부르는 내 집에서 '말다리 굽혀펴기'도 엄청 했다. 마침내 5개월 만에 체중이 470㎏까지 불었다. 그간의 고생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까. '히이잉~'.
2004년 11월14일. 마침내 경주마 데뷔 자격시험인 주행 조교검사에 출전했다. 합격기준은 1000m를 1분08초 내에 통과하는 것. 콧바람을 휘날리며 달렸으나 욕심이 앞섰던 탓일까. 1분10초04의 부진한 기록으로 보기 좋게 낙방했다. 두번째 검사도 역시 불합격. 결국 한달이 지난 세번째 시험에서야 간신히 기준 기록을 통과했다. 에구, 나는 결국 안되는 것인가.
절치부심. 한달 뒤 처음으로 1200m 경주에 나섰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이 아직 정식 개장하지 않은 탓에 모의 경주로 실시됐다. 실전과 마찬가지인 경주이나 결과는 4위. 두번째 경주에서는 꼴찌. 이후 4개월 동안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지난 5월 우승 경험이 없는 미승리마 경주 1200m에서 우승한 것이 최고 성적.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부진할 줄 몰랐다.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김 조교사에게 말했다. "아저씨, 이제 단거리는 안 뛸래요. 중·장거리에 나가도록 해주세요." "그래 맞다. 네가 힘이 좋다 보니 말몰이를 하는 기수가 먼저 지치는 것 같아." 우리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나는 지난 13일 처음으로 1600m 경주에 나서 2위로 골인했다.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불과 2주 만인 지난 24일 다시 1600m에 출전했다. 우리 경주마들은 한번 전력질주를 하면 평균 10㎏의 몸무게가 빠지기 때문에 한달 주기로 출전한다. 하지만 힘이 좋은 나는 출전을 고집했다. 그리고 2위를 2분의1 마신(말의 머리에서 궁둥이까지의 길이)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무엇보다 기쁜 건 1년 동안 헌신적으로 보살펴 준 김 조교사에게 700만원의 상금을 안긴 것. 경주마 등급 중 가장 낮은 4군에 속했던 내 위상도 2군까지 치솟았다. '천리마'라는 칭호도 얻었다. 경마장이 개장되면 내 실력을 온 천하에 알리리라.
일자리를 못 구해 괴로워하고 삶을 버리기까지 하는 청춘들이여. 조급하게 생각말고 '백락'을 기다려라. 너를 알아주는 사람만 만나면 '인생역전'도 머지않았으니. nsl@kookje.co.kr
내 이름은 '참좋은'. 혈기왕성한 세살배기 암말. 나는 요즘 행복하다. '비루먹은 말 뼈다귀'라고 조롱하던 사람들이 이젠 '천리마'라고 칭찬을 늘어 놓는다. "힘 좋게 생겼네"라며 섹시한 내 엉덩이를 툭 치는 경마꾼들도 많아졌다. 감히 숙녀 엉덩이에 손을 대다니. 하지만 기분은 좋다. 정말 마생(馬生)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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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참좋은'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헌신적으로 보살펴 준 부산경남경마공원의 김영관 조교사가 30일 나의 보금자리 마구간을 찾아왔다. 기분이 좋아 함께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 |
내가 현해탄을 건너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한국판 백락'을 만난 건 지난해 6월. 그때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몸무게도 350㎏에 불과했다. 경주마는 체중이 450㎏은 돼야 말 대접을 받는다. 뒷다리 한쪽마저도 아파 질질 끌고 다녔으니 누가 봐도 '경주마는 아니올시다'.
자존심이 상해 죽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가. 아빠는 통산 상금 14억원을 획득한 '오페라하우스'. 오빠 'T.M.OPERA O' 역시 18억원의 상금을 받은 명문가 혈통 아닌가.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다니. 내가 비루먹은 험악한 꼴이 된 건 일본에서 배를 타고 오는 사이 '산통'에 걸린 탓이다. 배앓이라고 불리는 산통은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치명적인 병이다.
많은 조교사들이 "혈통은 좋은데 어쩌다 저리됐나"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 나를 강제 폐사시킬까봐 얼마나 겁이 났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죽을 고비에서 날 구한 은인은 김영관(46) 조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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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힘들어 할 때마다 김 조교사는 "꼭 살아야 한다. 자식보다 더 큰 공을 너한테 들였다"고 속삭였다. 왕방울만한 내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뻔 했다. 팔뚝만한 주사도 열심히 맞았고, 마구간이라고 부르는 내 집에서 '말다리 굽혀펴기'도 엄청 했다. 마침내 5개월 만에 체중이 470㎏까지 불었다. 그간의 고생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까. '히이잉~'.
2004년 11월14일. 마침내 경주마 데뷔 자격시험인 주행 조교검사에 출전했다. 합격기준은 1000m를 1분08초 내에 통과하는 것. 콧바람을 휘날리며 달렸으나 욕심이 앞섰던 탓일까. 1분10초04의 부진한 기록으로 보기 좋게 낙방했다. 두번째 검사도 역시 불합격. 결국 한달이 지난 세번째 시험에서야 간신히 기준 기록을 통과했다. 에구, 나는 결국 안되는 것인가.
절치부심. 한달 뒤 처음으로 1200m 경주에 나섰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이 아직 정식 개장하지 않은 탓에 모의 경주로 실시됐다. 실전과 마찬가지인 경주이나 결과는 4위. 두번째 경주에서는 꼴찌. 이후 4개월 동안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지난 5월 우승 경험이 없는 미승리마 경주 1200m에서 우승한 것이 최고 성적.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부진할 줄 몰랐다.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김 조교사에게 말했다. "아저씨, 이제 단거리는 안 뛸래요. 중·장거리에 나가도록 해주세요." "그래 맞다. 네가 힘이 좋다 보니 말몰이를 하는 기수가 먼저 지치는 것 같아." 우리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나는 지난 13일 처음으로 1600m 경주에 나서 2위로 골인했다.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불과 2주 만인 지난 24일 다시 1600m에 출전했다. 우리 경주마들은 한번 전력질주를 하면 평균 10㎏의 몸무게가 빠지기 때문에 한달 주기로 출전한다. 하지만 힘이 좋은 나는 출전을 고집했다. 그리고 2위를 2분의1 마신(말의 머리에서 궁둥이까지의 길이)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무엇보다 기쁜 건 1년 동안 헌신적으로 보살펴 준 김 조교사에게 700만원의 상금을 안긴 것. 경주마 등급 중 가장 낮은 4군에 속했던 내 위상도 2군까지 치솟았다. '천리마'라는 칭호도 얻었다. 경마장이 개장되면 내 실력을 온 천하에 알리리라.
일자리를 못 구해 괴로워하고 삶을 버리기까지 하는 청춘들이여. 조급하게 생각말고 '백락'을 기다려라. 너를 알아주는 사람만 만나면 '인생역전'도 머지않았으니. ns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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